엔리코 알베르토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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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
엔리코 알베르토시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, 골키퍼로 활약했다. 그는 피오렌티나, 칼리아리, AC 밀란 등에서 뛰었으며, 칼리아리 소속으로 1969-70 시즌 세리에 A 우승을, AC 밀란 소속으로 1978-79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76-7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경험했다.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으로 1968년 유럽 선수권 대회 우승, 1970년 월드컵 준우승을 기록했다. 1980년 토토네로 스캔들에 연루되어 출장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. 세리에 A 통산 532경기에 출전하여 역대 최다 출전 10위에 이름을 올렸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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엔리코 알베르토시 - [인물]에 관한 문서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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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본 정보 |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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본명 | 엔리코 알베르토시 |
출생일 | 1939년 11월 2일 |
출생지 | 폰트레몰리, 이탈리아 왕국 |
키 | 1.82m |
포지션 | 골키퍼 |
클럽 경력 | |
유소년 클럽 | 연도: 1957–1958 클럽: 스페치아 칼초 1906 |
프로 클럽 | 연도: 1958–1968 클럽: 피오렌티나 출장: 185 득점: 0 연도: 1968–1974 클럽: 칼리아리 출장: 177 득점: 0 연도: 1974–1980 클럽: 밀란 출장: 170 득점: 0 연도: 1982–1984 클럽: 엘피디엔세 출장: 44 득점: 0 |
총 출장 및 득점 | 출장: 576 득점: 0 |
국가대표 경력 | |
국가대표팀 | 이탈리아 |
국가대표 연도 | 1961–1974 |
국가대표 출장 | 34 |
국가대표 득점 | 0 |
수상 내역 | |
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| 우승: 1968 이탈리아 |
FIFA 월드컵 | 준우승: 1970 멕시코 |
2. 클럽 경력
폰트레몰리 출신인 알베르토시는 유소년 시절 스페치아에서 축구를 시작했다.[15] 1959년 1월 18일, 18세의 나이로 피오렌티나 소속으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으며, AS 로마와의 경기는 0-0 무승부로 끝났다.[1][3][4][5][6] 피오렌티나에서 처음 5시즌 동안 줄리아노 사르티와의 주전 경쟁에서 주로 후보 선수로 활약했지만, 1968년까지 1966년 미트로파컵, 1961년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, 그리고 1961년과 1966년에 두 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했다.[1][3][4][5][6][15]
1968년, 알베르토시는 루이지 리바가 있는 칼리아리 칼초로 이적했다. 그는 칼리아리에서 2년차인 1969-70 시즌에 칼리아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스쿠데토를 획득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. 당시 칼리아리는 16개 구단 중 역대 한 시즌 최소 실점인 16실점만을 허용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.[1][3][4][5][6]
알베르토시는 1974년에 밀란으로 이적해 6년을 몸담으며, 1978-79 시즌에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고, 1976-77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도 들어올렸다.[19][21][22][23][24][16] 밀란의 경기에 233번 출전한 그는 크리스티안 아비아티(380경기), 세바스티아노 로시(330 경기), 지다(302경기), 그리고 로렌초 부폰(300경기)에 이어 밀란의 역대 최다 출전 5위의 골키퍼다.[25][7]
알베르토시는 이탈리아의 1980년 "토토네로" 도박 스캔들에 연루되어, 활동이 2년 정지되었다.[4] 이탈리아가 1982년 월드컵을 우승한 후, 이탈리아 축구 연맹은 그를 다시 발탁할 수 있도록 징계를 해제했다. 그는 1984년에 세리에 C2의 엘피디엔세 소속으로 44세가 될 때까지 뛰고 은퇴했다.[22][4] 세리에 A 경기에 532번 출전한 알베르토시는 세리에 A 역대 최다 출전 10위를 세우고 있다.[21][22][24][26][3][6][8]
2. 1. 초기 경력 및 피오렌티나 시절
폰트레몰리 출신인 알베르토시는 유소년 시절 스페치아에서 축구를 시작했다.[15] 1959년 1월 18일, 18세의 나이로 피오렌티나 소속으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으며, AS 로마와의 경기는 0-0 무승부로 끝났다.[1][3][4][5][6] 피오렌티나에서 처음 5시즌 동안 줄리아노 사르티와의 주전 경쟁에서 주로 후보 선수로 활약했지만, 1968년까지 1966년 미트로파컵, 1961년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, 그리고 1961년과 1966년에 두 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차지했다.[1][3][4][5][6][15]1968년, 알베르토시는 루이지 리바가 있는 칼리아리 칼초로 이적했다. 1969-70 시즌에는 칼리아리의 사상 첫 세리에 A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, 16개 팀으로 구성된 리그에서 당시 최소 실점 기록을 세웠다.[1][3][4][5][6]
1974년에는 AC 밀란으로 이적하여 6년간 활약하며 1978-79 시즌 세리에 A 우승과 1976-77 시즌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추가했다.[1][3][4][5][6][16] 밀란 소속으로 233경기에 출전한 그는 크리스티안 아비아티(380경기), 세바스티아노 로시(330 경기), 지다(302경기), 로렌초 부폰(300경기)에 이어 밀란 역대 최다 출전 골키퍼 5위에 올랐다.[7]
1980년, 알베르토시는 "토토네로" 도박 스캔들에 연루되어 2시즌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.[4] 1982년 FIFA 월드컵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한 후, 이탈리아 축구 연맹은 징계를 해제했고, 그는 세리에 C2의 엘피디엔세에서 두 시즌을 더 뛴 후 1984년에 44세의 나이로 은퇴했다.[4] 세리에 A에서 총 532경기에 출전한 알베르토시는 세리에 A 역대 최다 출전 10위를 기록하고 있다.[3][4][6][8]
2. 2. 칼리아리 칼초와 스쿠데토
폰트레몰리 출신인 그는 유년 시절에 스페치아의 유소년부를 졸업하고, 1959년 1월 18일에 18세의 나이로 피오렌티나에서 로마를 상대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. 그는 피오렌티나에서 5년간 줄리아노 사르티와 주전 경쟁을 벌이며 주로 후보 선수로 활약했지만, 1961년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초대 우승과 1961년과 1966년에 두 차례 코파 이탈리아 우승, 그리고 1966년 미트로파컵 우승을 경험했다.[19][21][22][23][24]1968년, 알베르토시는 루이지 리바의 칼리아리 칼초로 이적했다. 그는 칼리아리에서 2년차인 1969-70 시즌에 칼리아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스쿠데토를 획득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. 당시 칼리아리는 16개 구단 중 역대 한 시즌 최소 실점인 16실점만을 허용하며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.[1][3][4][5][6]
2. 3. AC 밀란과 말년
알베르토시는 1974년에 밀란으로 이적해 6년을 몸담으며, 1978-79 시즌에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고, 1976-77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도 들어올렸다.[19][21][22][23][24][16] 밀란의 경기에 233번 출전한 그는 크리스티안 아비아티(380경기), 세바스티아노 로시(330 경기), 지다(302경기), 그리고 로렌초 부폰(300경기)에 이어 밀란의 역대 최다 출전 5위의 골키퍼다.[25][7]알베르토시는 이탈리아의 1980년 "토토네로" 도박 스캔들에 연루되어, 활동이 2년 정지되었다.[4] 이탈리아가 1982년 월드컵을 우승한 후, 이탈리아 축구 연맹은 그를 다시 발탁할 수 있도록 징계를 해제했다. 그는 1984년에 세리에 C2의 엘피디엔세 소속으로 44세가 될 때까지 뛰고 은퇴했다.[22][4] 세리에 A 경기에 532번 출전한 알베르토시는 세리에 A 역대 최다 출전 10위를 세우고 있다.[21][22][24][26][3][6][8]
3. 국가대표팀 경력
알베르토시는 1961년 9월 15일, 조반니 페라리 감독의 임기에 피렌체에서 4-1로 이긴 아르헨티나와의 친선경기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렀다.[1][4][6][19][22][24] 그의 첫 국가대표팀 공식 경기는 1972년 6월에 열렸고, 이탈리아는 소피아 원정에서 불가리아와 1-1로 비겼다.[1][4][6]
에드몬도 파브리 감독의 지휘 하에 알베르토시는 이탈리아 선수단의 주전으로 도약했다. 그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했지만, 조별 리그에서 충격적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.[1][4][5][19][22]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알베르토시는 칼리아리 소속으로 한 훌륭하고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다시 수문장을 맡았다. 그는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, "세기의 경기"로 회자되는 이탈리아와 서독 간의 준결승전에도 출전했다.[1][4][5][9][10][17][19][22][23] 비록 3골을 망설임과 고민으로 머뭇거리면서 실점했지만, 알베르토시는 경기 막판에 여러 차례 몸을 날려 선방을 한 데에 찬사를 들었다. 그는 이 경기 도중 잔니 리베라를 질책한 것으로도 알려졌는데, 리베라가 공 정지 상황에서 범한 실책이 서독의 동점골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.[1][19][22][23][27][28] 리베라는 잠깐 골문에서 떨어져 게르트 뮐러가 원하는 데로 이동할 수 있도록 견제를 받지 못했고, 추가골을 110분에 서독이 다시 성공시키며 경기가 3-3 동률로 진행되었다. 리베라는 몇 분 후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결자해지를 했다. 알베르토시는 이후 1970년 월드컵 결승전에도 출전했지만,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1-4로 패하면서 이탈리아는 대회를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.[1][4][5][9][10][19][22][23]
알베르토시는 1962년 칠레 월드컵에 페라리 감독의 부름을 받아 로렌초 부폰과 카를로 마트렐을 보좌할 후보 수문장으로 참가했고,[11][29] 1974년 월드컵에서는 디노 초프의 잠재적 경쟁자로 간주되었고,[11][29] 그는 이탈리아 감독의 선수단 순회 출전 원칙의 지속적인 변경에 따라 이탈리아의 주전 수문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. 알베르토시는 유로 1968에서도 초프의 후보 수문장으로 참가했는데, 안방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했고, 이후 초프와 1970년 월드컵 주전 수문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. 그는 1978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이탈리아의 제3 골키퍼 자리를 놓쳤다. 그는 1961년부터 1972년까지 중에 직접 출전한 경우는 34번에 불과했다.[1][4][5][12][19][22][23][30]
3. 1. 1960년대: 데뷔와 유로 1968 우승
알베르토시는 1961년 9월 15일, 조반니 페라리 감독의 임기에 피렌체에서 4-1로 이긴 아르헨티나와의 친선경기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렀다.[19][22][24] 에드몬도 파브리 감독의 지휘 하에 이탈리아 선수단의 주전으로 도약한 그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했지만,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.[19][22]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알베르토시는 칼리아리 소속으로 보여준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다시 이탈리아의 주전 수문장을 맡았다. 그는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, "세기의 경기"로 회자되는 서독과의 준결승전에도 출전했다.[19][22][23] 비록 3골을 실점했지만, 경기 막판에 여러 차례 선방을 하여 찬사를 받았다.[27][28] 그는 1970년 월드컵 결승전에도 출전했지만,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1-4로 패하면서 이탈리아는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.[19]
1962년 칠레 월드컵에 후보 수문장으로 참가했던 알베르토시는[29] 1974년 월드컵에서는 디노 초프의 잠재적 경쟁자로 간주되었고,[19][22][23] 유로 1968에서도 초프의 후보 수문장으로 참가했는데, 안방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했다.[30] 그는 1961년부터 1972년까지 34번의 국가대표팀 경기에 출전했다.[19]
3. 2. 1970년 FIFA 월드컵: 준우승의 주역
엔리코 알베르토시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선수단의 주전으로 활약했지만, 조별 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.[19][22]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칼리아리에서의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다시 주전 수문장을 맡아 이탈리아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다.[19][22][23][27][28] 특히 "세기의 경기"로 불리는 서독과의 준결승전에서 3골을 실점했지만, 경기 막판 여러 차례 선방을 기록하며 찬사를 받았다.[19][22][23][27][28] 그는 이 경기에서 잔니 리베라의 실책으로 서독의 동점골을 허용하자 그를 질책하기도 했다.[19][22][23][27][28] 결승전에서 브라질에 1-4로 패하며 이탈리아는 준우승을 차지했다.[19][22][23][27][28]알베르토시는 1962년 칠레 월드컵과 1974년 월드컵에도 참가했지만, 각각 후보 선수와 디노 초프의 경쟁자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.[29] 그는 유로 1968에서 초프의 후보 선수로 이탈리아의 우승을 함께 했으며, 1970년 월드컵에서는 주전 경쟁에서 승리했다.[19][22][23][30] 그는 1961년부터 1972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34경기에 출전했다.[19][22][23][30]
3. 3. 1960년대와 1970년대 월드컵 참가
알베르토시는 1961년 9월 15일, 조반니 페라리 감독의 임기에 피렌체에서 4-1로 이긴 아르헨티나와의 친선경기에서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신고식을 치렀다.[19][22][24] 그의 첫 국가대표팀 공식 경기는 1972년 6월에 열렸고, 이탈리아는 소피아 원정에서 불가리아와 1-1로 비겼다.[1][4][6]에드몬도 파브리 감독의 지휘 하에 알베르토시는 이탈리아 선수단의 주전으로 도약했다. 그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했지만, 조별 리그에서 충격적인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.[1][4][5]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알베르토시는 칼리아리 소속으로 한 훌륭하고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다시 수문장을 맡았다. 그는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의 모든 경기에 출전했고, "세기의 경기"로 회자되는 이탈리아와 서독 간의 준결승전에도 출전했다.[9][10][17] 비록 3골을 망설임과 고민으로 머뭇거리면서 실점했지만, 알베르토시는 경기 막판에 여러 차례 몸을 날려 선방을 한 데에 찬사를 들었다. 그는 이 경기 도중 잔니 리베라를 질책한 것으로도 알려졌는데, 리베라가 공 정지 상황에서 범한 실책이 서독의 동점골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.[1] 리베라는 잠깐 골문에서 떨어져 게르트 뮐러가 원하는 데로 이동할 수 있도록 견제를 받지 못했고, 추가골을 110분에 서독이 다시 성공시키며 경기가 3-3 동률로 진행되었다. 리베라는 몇 분 후 결승골을 성공시키며 결자해지를 했다. 알베르토시는 이후 1970년 월드컵 결승전에도 출전했지만,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1-4로 패하면서 이탈리아는 대회를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.[1][4][5]
알베르토시는 1962년 칠레 월드컵에 페라리 감독의 부름을 받아 로렌초 부폰과 카를로 마트렐을 보좌할 후보 수문장으로 참가했고,[11] 1974년 월드컵에서는 디노 초프의 잠재적 경쟁자로 간주되었고,[29] 그는 이탈리아 감독의 선수단 순회 출전 원칙의 지속적인 변경에 따라 이탈리아의 주전 수문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. 알베르토시는 유로 1968에서도 초프의 후보 수문장으로 참가했는데, 안방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이탈리아가 우승했고, 이후 초프와 1970년 월드컵 주전 수문장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. 그는 1978년 월드컵을 앞두고는 이탈리아의 제3 골키퍼 자리를 놓쳤다. 그는 1961년부터 1972년까지 중에 직접 출전한 경우는 34번에 불과했다.[1][4][5][12]
4. 경기 스타일
알베르토시는 신체적으로 강인하고, 괴짜이며, 운동신경이 뛰어난 골키퍼로 다혈질적이었다.[19][21][23][24][31] 그는 이탈리아 수문장들 중 역사에 손꼽히며, 당대 기술 및 심리적인 면에도 최고로도 평가되었다.[19][21][23][24] 외향적인 선수로, 효율적이면서도 창의적인 골키퍼였으며, 반응력, 속도, 민첩함, 결정적이며, 운동신경이 뛰어나며, 놀라운 선방을 하는 능력이 있었다.[19][21][24] 하지만, 명성과 오랜 현역 생활, 그리고 전반적 꾸준함에도 불구하고, 간혹 효율이 떨어지고 정신적으로 흔들리기도 한 데에 비판을 받았고, 장난기 있고, 진지하지 못한 성격으로 한때 꾸준함을 반감시킨다는 평도 있었다.[19][21][23][31]
4. 1. 토토네로 스캔들
4. 2. 잔루이지 돈나룸마와의 관계
AC 밀란의 후배인 잔루이지 돈나룸마가 2017년에 구단과의 계약 연장을 거부했을 때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.[18]5. 수상 내역
5. 1. 클럽
알베르토시는 피오렌티나에서 1960–61, 1965–66 , 1960–61 , 1966 시즌에 우승을 하였다.[19][22][1][4] 칼리아리에서는 1969–70 시즌에 우승을 하였다.[19][22][1][4] 밀란에서는 1978–79 시즌과 1976–77 시즌에 우승컵을 들어올렸다.[19][22][1][4]5. 2. 국가대표팀
엔리코 알베르토시는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활동하며 주요 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.[19][22][1][4] 1968년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였고,[19][22] 1970년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기록했다.[19][22][1][4]5. 3. 개인
엔리코 알베르토시는 2018년에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.[32][14]참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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Enrico Albertosi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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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 anni e 150 in rossonero: Donnarumma da talento a fenomeno, con il Milan nel cuore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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